해발 800m,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높이(837m)와 맞먹는 곳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. 바로 반야봉과 노고단,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쪽 주봉에 둘러싸인 심원마을이다. <br /><br />'하늘아래 첫 동네'로 불리는 심원마을은 구한말 약초꾼들이 하나둘 모여 일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. 주로 약초나 산나물을 캐서 생계를 꾸려가던 이 마을은, 그러나 1987년 지리산 관광도로가 개통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. <br /><br />관광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, 지리산 속 깊은 오지 마을도 개발과 오염을 피할 수 없었다. 약초를 캐고, 고로수액을 채취하던 마을은 지금은 음식점과 펜션이 밀집한 일종의 상업지역처럼 변했다. <br /><br />심원마을은 반야봉과 노고단, 만복대로 이어지는 삼각형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. 지리산 자연생태계의 핵심역할을 하고 있고, 최근들어서는 반달가슴곰도 인근에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. <br /><br />하지만 음식점과 민박집이 들어서면서 산촌마을의 특성은 사라졌고, 환경 훼손과 함께 산사태 위험도 커지고 있다. <br /><br />지리산국립공원 남부사무소 김병채 과장은 "특히 여름철 성수기가 되면 관광객들이 몰려 계곡수 등의 오염이 심각하고, 마을 자체도 안전진단 결과 산사태 위험이 상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"고 말했다. <br /><br />이에따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 2006년부터 심원마을의 이전을 추진해왔다.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건물을 철거해, 마을을 지리산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. <br /><br />이미 1개 가구는 작년에 보상을 받고 마을을 떠났고, 나머지 18가구가 남아 있는 상태. 이 가운데 14가구는 보상과 이주에 합의하고 감정평가를 받고 있다. <br /><br />아들까지 5대째 심원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이송자(72.여) 씨는 "심원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약초와 고로쇠 수액 등을 채취하며 살았다"며 "평생 살아온 마을을 막상 떠나려니 많이 섭섭하다"고 울먹였다. <br /><br />하지만 여름에는 산사태 걱정에, 겨울이면 폭설로 교통이 끊기는 오지 생활은 힘겹다. 게다가 마을이 점차 고령화 되면서 이제는 떠나겠다는 사람이 많아졌다. <br /><br />그렇지만 4개 가구는 여전히 완강하다. 마을 대책위원장인 선종삼(64)씨는 "당국이 마을을 무조건 없애려고 한다"며 "여기서 보상을 받아 나간다고 해도 어디서 이렇게 또 집을 지어 장사를 하겠냐"고 막막함을 호소했다. <br /><br />반대하는 가구들은 이주단지를 만들어주거나, 그렇지 않으면 기존의 마을에서 공존하는 방안을 찾아달라는 입장이다. <br /><br />그러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보상비와 복원공사비 등 250억원을 들여 내년에 이주를 완료하고, 2년 뒤에는 복원작업을 시행할 계획이다. 이 과정에서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협의도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이다. <br /><br />자연, 특히 생태계가 잘 보전된 국립공원은 사람도 이용하지만, 야생 동식물도 함께 살아가야하는 공간이다. 지리산 국립공원의 한복판에서 사람이 한발짝 물러나며 시작되는 자연과의 공존 실험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, 하늘아래 첫 마을 '지리산 심원마을'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.